8년의 망명생활 끝에 파키스탄으로 돌아가던 날인 10월 18일,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는 두바이를 떠나며 측근에게 편지를 건넸다.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 본인에게 직접 전달해 달라는 당부와 함께였다. 편지엔 '만일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다음 명단에 나오는 인사를 조사해 달라'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뉴스위크는 "명단에는 정적들의 이름이 포함됐다"며 "그날 귀국 환영행사 중 자살폭탄 테러가 발생할 것을 예감한 셈"이라고 전했다. 부토는 폭발 수분 전 장갑 트럭에 옮겨 탄 덕분에 134명이 숨진 자폭 테러에서 겨우 살아남았다.
그러나 이런 위협에도 불구하고 부토는 시민들과 만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3일 뒤에는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에 그의 글이 실렸다. 부토는 "내가 자살폭탄 테러범들에게 겁먹을 정도라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다"고 썼다.
부토 총격 범인 모습 27일 베나지르 부토 전 파키스탄 총리가 사망하던 순간 한 일반인이 촬영해 29일 파키스탄 ‘돈 TV’가 공개한 사진. 선글라스를 낀 남자가 총을 들어 부토 전 총리 쪽을 겨누고 있다. 라호르=EPA 연합뉴스
27일 피살되기 전 부토는 무샤라프 정부가 자신에게 적절한 보호 조치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불만을 제기해 왔다. CNN에 따르면 부토는 10월 26일 측근에게 e-메일을 보내 "내가 공격을 당한다면 책임은 무샤라프에게 지울 것"이라고 했다. 경찰 경호와 폭탄테러 방지용 전파 방해 기기 등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는 것이다.
베나지르 부토 (Benazir Bhutto)는 누구인가?
이슬람권에서 최초로 여성 총리를 지낸 부토 여사가 28일 자살폭탄테러에 의해 숨졌다. 부토여사는 파키스탄의 수도 카라치에서 출생했다. 이슬람국가 최초의 여성 지도자로서, 정치가 줄피카르 알리 부토의 딸이다.
1978.7월 가족사진 어머니 누스라트, 남동생 샤흐나와즈, 아버지 알리 부토 전총리, 베나지르 부토전총리 아래는 오빠 무르타즈, 여동생 사남 아버지인 알리 부토는 파키스탄 최초의 민선 총리였다.. 하지만 군부의 쿠데타로 실각한 뒤 결국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부토는 하버드 대학에서 정치를 전공하고 옥스퍼드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돌아온 뒤 아버지의 후광을 업고 '정치권의 스타'가 됐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88년 35살의 나이로 이슬람권 최초의 여성총리가 되었다.
하지만 이듬해 부패 혐의로 물러났다. 93년 다시 총리가 되지만 3년만에 부패 스캔들에 엮여 또 다시 중도 하차하고 말았다. 부토는 집권시기 여성 인권 신장에 앞장섰지만 탈레반 정권을 지원하고 불법 자금 세탁에 관여했다는 오명도 받고 있다.
부토의 두 남동생 역시 비극적 죽음을 맞았다. 정치적으로 누이를 적극 후원했던 남동생 무르타지는 지난 96년 카라치 자신의 집앞에서 경찰의 총격을 받아 숨졌고 막내동생인 샤흐나와즈 역시 지난 85년 프랑스에서 의문의 시체로 발견됐다.
미국의 하버드대학과 영국의 옥스퍼드대학에서 유학하고 귀국한 후, 당시 총리로 있던 부친이 육군참모총장인 모하마드 지아 울 하크의 군사쿠데타로 실각되고 1979년 처형되자, 부친이 창당한 파키스탄인민당(PPP)의 중앙위원이 되어, 야당연합체인 민주주의회복운동(MRD)의 일원으로 반정부운동을 벌였다.
1981년 하크 정권에 의하여 체포되어 약 3년간 옥고를 겪고 1984년 유럽으로 망명, 망명지에서 PPP를 원격조종하는 한편, MRD를 앞세워 계엄령 철폐와 대통령 하크의 사임을 촉구하였다.
대통령 하크가 계엄령을 해제하자, 1986년 4월 망명생활을 청산하고 귀국, 전국을 돌며 민주화운동을 주도하였다. 1988년 8월 대통령 하크가 비행기추락사고로 사망하자, 11월 선거에서 PPP가 여당을 누르고 최다의석을 획득, 무소속의원을 영입해 총리로 취임하였다.
취임 후 11년에 걸친 군부독재의 유산을 청산하기 위한 민주화개혁을 시도하였으나 군부와 야당의 견제로 좌절되었으며, 1991년 총선거에서 패배하여 총리직에서 해임되었다. 그러나 1992년 재기를 노리며 현정권퇴진, 조기총선을 요구하며 반정부시위를 주도, 1993년 10월 재집권했다.
“당신을 내 가슴에 묻습니다”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의 한 지지자가 29일 1만여 명의 추도객이 모인 가운데 라호르에서 열린 추도식에서 촛불에 불을 붙이고 있다. 라호르=AFP 연합뉴스
그러나 군부정권인 무샤라프 정권이 출범하자 다시 망명길에 올랐다. 그녀는 최근 8년 만에 고국으로 귀국해 민주화 운동을 주도했다. 그녀는 귀국시에도 자살 폭탄 테러 공격을 받았었다. 베나지르 부토 전(前) 파키스탄 총리는 잇따른 테러 위협에도 불구하고 대중과의 접촉을 위해 방탄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는등 '포퓰리스트' 성향이 암살을 부른 원인 가운데 하나라고 AP통신이 31일 지적했다.
부토의 남편과 외아들 파키스탄인민당의 공동의장으로 선출된 부토 전 파키스탄 총리의 남편인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 씨(왼쪽)와 외아들인 빌라왈 자르다리 씨(19세). 라호르=AP연합뉴스 부토의 ‘빌라왈 하우스’ 박물관으로 파키스탄인민당(PPP) 관계자는 부토 전 총리의 남편이자 새로 선출된 당의장인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가 신드주(州) 카라치의 빌라왈 하우스를 부토를 위한 박물관으로 꾸미기로 했다고 밝혔다. 카라치 항구 근처의 클리프턴지구 3블록 30번지에 위치한 빌라왈 하우스는 부토가 1987년 결혼 이후 1999년 자발적 망명 직전까지 살았던 곳이다. 또 부토는 지난해 10월 8년 간의 망명생활을 정리하고 돌아온 뒤 후계자이자 아들인 빌라왈 부토 자르다리의 이름을 따 명명한 이곳에서 생의 마지막 2개월을 보냈다. PPP측은 이 빌라왈하우스에 암살된 부토 전 총리와 역시 군부독재 하에서 사형을 당한 그녀의 아버지 줄피카르 알리 부토 전 총리의 유물들을 전시하고 일반에 개방할 예정이다. -머니투데이, 동아뉴스, 연합뉴스, 한겨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