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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로 걷기...아랍궁전 오만대사관, 서울 역사박물관

liberum 6 3471  
신문로와 새문안로, 역사박물관 전시회 관람, 경희궁과 서대문로까지  걸었습니다.
새문안교회를 보며 지나쳤는데, 현재 새교회건물을 2017년 완공목표로  신축한다는 뉴스를
이제서야 알게됐으니, 사진을 못찍고 지나온게 좀 후회가 되는군요. 우리 서울엔 사라진 건물들이
너무 많습니다.  1887년 언더우드 선교사가 한옥으로부터 시작한 새문안교회...
한글회관과 오만 대사관을 지나왔습니다. 그리고 앞 광장의 면목을 바꾼, 서울 역사박물관에서
기획전시중인 '동소문별곡'과 '서소문 별곡'을 관람했습니다. 한양 1800년대의 천주교 역사를
다룬 의미있는 전시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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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일의 아랍양식으로 지은 주한오만대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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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경 신축한 오만 대사관은 793㎡ 대지에 지하 3층, 지상 5층 규모입니다. 국내 유일한
아랍풍 대사관이죠.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활동하는 프랑스인 건축가 다비드 피에르 잘리콩
디피제이파트너즈 대표가 설계를 맡았습니다. 시공은 한국과 오만의 합작품으로,  대리석은 오만에서
직접 들여왔고 유리와 창호 등은 한국에서 조달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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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리콩 대표는 “오만의 전통과 서울의 현대성을 조화시키려 했다. 대사관 건물은 ‘오만 궁전’을
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오만에 수주간 머물며 건축물을 둘러봤고, 설계에
오만 전통 구조와 문양을 담았다고 합니다.
 
잘리콩 대표는 “오만은 무척 더운 나라로 사람들이 많은 시간을 실내에서 보낸다. 그래서 실내를
외부보다 더 화려하게 꾸민다”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수도 서울내이긴 하지만 대사관 안에서
만큼은 오만 궁전에 있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니 참 구경하고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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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은 아라비아 반도 동남쪽에 위치한 중동의 왕정국가다. 아라비아해에 접해 있고 해안
길이만 2000여 ㎞에 달한다. 중동 해상 활동의 거점지이자 산유국이다. 우리나라와 오만은
74년 3월 수교했다. 76년 오만에 한국대사관이 들어섰고, 84년 주한 오만대사관이 설치됐다.'
- 중앙일보 조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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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대사관 옆은 한글회관입니다.
이 모퉁이에 훈민정흠 기념비, 훈련도감터가 있고, 구세군 순교자표지석이 생겼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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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국생명과 금호아시아나 건물 사이 햄머링 맨은 아직도 변함없이
햄머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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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역사박물관 앞 나무들이 많이 자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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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한성부 지도 위에 바닥분수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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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이사온 유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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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메 종루였는 지 모르지만 상당히 우람한 주춧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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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궁 정문 돌아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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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월 경희궁 개관 즈음 갔을때  설치중이던...상당히 궁궐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던 그 건물이 서울 시립경희궁미술관이었습니다.
초기에 프라다였었는지 무슨 명품전시회를 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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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궁 정문인 흥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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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이기붕씨 서대문 집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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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에 본 동아일보 연재중인 이종찬 회고록 동경 2편<육사 면접장 편>에 보면 이종찬 전의원은
이런 의견이 있더군요..

“나는 지금도 이기붕 씨와 이강석 군에 대한 평가는 후세 역사가 다시 정리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지금은 마치 이승만 대통령의 권력을 호가호위한 아첨꾼으로 매도하고 있을 뿐이지만 내가 아는
이기붕 씨는 국방부장관으로 있으면서 ‘국민방위군 사건’을 명쾌하게 처리했으며 당당하게 아들을
육사에 보낼 정도로 인격을 갖춘 분이었다. 강석이 면회를 올 때도 육사 간부들이 아무도 나오지
못하게 하고, 직접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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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고 이종찬과 서울고 이강석이 육사시험장에서 만났을때 이종찬씨가 이강석에게 물었답니다.

“어떻게 육사를 가기로 결심했냐?”
이종찬이나 이강석이나 둘 다 체력이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었다. 이강석은 담담하게 말했다.
“나는 원래 군인 되기를 희망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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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적십자병원
 1905년 고종황제 칙령 제47호로 설립된 서울적십자병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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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십자병원은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질곡에서 국민과 함께 애환을 겪어 온 공공병원의 산역사입니다.
일제강점기 시절 독립을 위해 헌신하시던  분들,  한국전쟁 중에는 민족의 생명과 고통 경감을 위해,
쉼 없는 진료활동을 전개했습니다.
그리고  화가 이중섭 선생이 이병원에서 고된 생을  마감했습니다. 나혜석 선생도 이 병원이었던가?
하는 생각에 확인해 보니, 그 분은 원효로 시립 자제원 무연고병동에서 별세했습니다.
 
 

6 Comments
콩지 2014.09.03 20:15  
오만대사관과 새문안교회 그리고 경희궁,서울역사박물관 등등 많이 걸으셨네요.경희궁 안에서 서울시교육위원회 건물을 지나서 성곽을 끼고 조금만 걸으면 홍난파가 살던 집이 있습니다. 개방이 되어 있어서 안을 둘러보면서 옛 시절을 떠올려 보아도 좋습니다
리버룸 2014.09.03 21:14  
전에 중앙일보 기사를 보고 한번 가고 싶었던 곳인데,홍난파 가옥 좋은 정보입니다. 아주 옛날 홍난파선생부인이 명동에서 개선문이라는 다방을 운영했었던 것같은데...그것도 틀린 기억인지 모르겠습니다..
파우 2014.09.05 00:25  
우남시대가 무너지던 때 가장 기억에 선명한 것이 이강석의 최후결단이었지요. 이기붕은 아니라도 박마리아? 여사가 바람을 몰고 다녔지 싶습니다.
리버룸 2014.09.05 12:48  
예, 그런 최후 결단도 쉽지 않습니다. 처음에 그 가족이친분이 없었던 강영훈사단장의 사단으로 와서 1박인가 했다는 기록을 본 적이 있습니다. 기붕리와 박마리아의 실체가 어떠했는지... 궁금하군요..
mulim1672 2014.09.05 18:45  
1967년 영동의 촌놈이 갓 경찰이 된 형을 믿고 상경, 첫 셋방이 사직동으로 고지대 어느 미망인의 집에 셋방을 얻어 서울 생활을 시작하면서 거닐던 신문로와 사직동 골목이 아련히 떠오릅니다. 그래도 서울의 중심지여서 길거리의 문패들을 보면 관계나 재계의 거물들 집이 많았지요.그때는 다 그만그만한 삶이어서인지 나이가 어려서인지 삶의 격차를 못느꼈습니다.사직동 안쪽도 재개발로 많이 변했겠지요.
리버룸 2014.09.06 00:48  
네, 서촌지역과 가까운데, 다른 곳 보다는 개발이 덜되어 정감있는 골목길 집들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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