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의 이궁(離宮)...경희궁 & 흥화문
liberum
서울시와 근교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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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18 21:47
경희궁은 경복궁 서쪽에 세워진 까닭으로 서궐(西闕)로 불렸고, 반면에 창덕궁과 창경원은
동궐(東闕)이라 불렸습니다. 경희궁은 순조 29년(1829년) 10월 화재로 인하여 전각 대부분이
소실된 것을 1831년에 중건하였습니다. 이 곳에서 숙종이 태어났고, 숭정문에서는 경종, 정조,
헌종이 즉위하였으며, 숙종, 영조, 순조가 승하한 곳이랍니다.
2009년 3월 초순 복원이 갖 완공되어 단청 채색 내음이 날 무렵 처음 와 보고 두번째 방문을 했습니다.
서울 역사박물관에서 경희궁 가는 길
일제가 일본인 학교인 경성중학교를 궁궐의 서쪽에 세우면서, 경희궁의 많은 전각들은 헐리거나
다른 곳으로 옮겨졌는데, 숭정전은 일본의 한 불교 종파인 조동종의 조계사 본전으로 쓰기 위해
1926년 남산 기슭으로 이전 건축되었다가 지금은 동국대학교의 법당인 정각원으로 쓰이고 있답니다.
흥정당은 1928년 광운사로 이건되었으며, 관사대(觀射臺)는 사직단 뒤쪽으로 이건되어 현재
황학정(黃鶴亭)으로 쓰이고 있답니다.
경희궁의 원래 이름은 경덕궁(慶德宮)이었는데, 그 터는 원래 인조의 아버지인 원종(정원군)의 사저가
있던 곳이었답니다. 광해군은 임진왜란 뒤 재건된 창덕궁으로 들어가기를 꺼리고, 인왕산 아래 새 궁궐인 仁慶宮을 짓다가 이복동생인 정원군의 집에 왕기가 서렸다는 풍수설을 믿고 왕기를 누르기 위하여 그의 집을 빼앗아 1617년(광해군 6년)~1623년(광해군 15) 사이에 경덕궁을 세웠다고 전해집니다.
현대건설에 매각되었습니다. 그 뒤 서울특별시에서 이 터를 매입하여 사적 제271호로 지정하였으나,
서울시의회에서 경희궁 복원비용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하면서 복원공사가 중지되었습니다.
그후, 시에서 경희궁터에 서울역사박물관을 세우면서 다시 훼손되었지요. 창건당시의 경희궁 규모는
무덕문지(북문)의 유구가 발견된 대한축구협회, 성곡미술관, 일조각출판사, 내수동교회, 구세군회관,
서울시교육청, 서울복지재단 그 모두가 경희궁지였으며, 기상청 서울관측소 일부도 포함되는 것으로
추측된다고 합니다.
왕기가 있다고 소문이 났던 서암이 이쪽인지...아래쪽 바위인지..
영조의 어진
본래의 위치는 구세군회관 자리라 합니다. 결국 흥화문은 원 위치에 구세군회관이 위치한 관계로
원위치에 옮길 수가 없어 서쪽으로 100여m 이동하여 복원하게 되었습니다
통감부중학교를 짓기위해 헐리는 경희궁 , 1907년경
숭정전의 옛모습(현재의 동국대학교 정각원)
경희궁과 경운궁을 잇는 홍교, 1902년경
경희궁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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