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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유물전시관 - 윤두서상. 유화백마도. 미인도. 고산유고.유물

liberum 10 6292  
 
고산윤선도유물전시관은 2011년도 건축문화대상 대통령상을 받은 작품이더군요.
지상 1층과 지하 1층 건물로, 앞도로에서 진입하는 정문은  전통 한옥이지만, 윤선도 문학공원과
녹우당으로 나가게 되는 복도문쪽에서 보면,  철근 콘크리트조의 2층 건물이었습니다.
지상의 전시관에서 지하의 전시관으로 내려오면, Hall식 안뜰(Atrium)이 있어서 지상과 다름없는
공간감을 느낄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홀 중앙 엘리베이터  기둥에는  '녹우당의 미인도'가  황홀하게 부조되어 있었습니다.
우아.. 이 미인도가 도둑맞았다가 찾아냈다는 그 미인도로구나!  수년전 처음 발견됐을 당시,
작자미상으로 알려졌다가 윤두서의 손자 윤용의 그림임이 밝혀진,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와
쌍벽을 이루는 녹우당 미인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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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공원과 연결되는 전시관 지하1층의 문.
윗층에는 교육관과 연결되어 다도체험 등을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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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면적 1830m²(약 550평)에 지하 1층, 지상 1층 규모의 유물전시관은 전통한옥과 현대건축의

절묘한 조화를 이룬 구조물로 2010년 10월 준공됐다. 자연 채광과 외부 조명을 최대한 살려

고산의 삶과 문화예술을 아름다운 전통한옥으로 구성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지하 전시관과

지상 전통한옥을 이어주는 매개 공간으로 아트리움을 도입한 것과 전시관 동선 배치의 마지막을

녹우당으로 자연스럽게 연계해 조화를 이룬 것도 건축적으로 높은 점수를 받았다. 
(동아일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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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층에서 내려다 본 아래층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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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없이 갔다가 뜻밖에 대형 미인도를 만났습니다. 

엘리베이터 기둥 윗부분에 부조되어 있었어요.
 1989년에 도난당하여 일본에 밀매되기 직전 절도범이 붙잡혀

해남 윤씨 종가로 돌아왔다는 뉴스의 그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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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가채머리를 손으로 매만지는듯하고, 저고리는 짧아서 겨드랑이 속살이

드러나는듯 하며, 치마는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풍성합니다.

이 그림은 윤두서의 후손이 1982년 녹우당 소장품들 속에서 발견했는데,

작자 미상으로 발표됐었습니다. 1998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한국관 개관

작품으로 걸리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출장 중인지, 이번 전시장에서는

만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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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재 윤두서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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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재 나이 41세에 본 손자, 청고 윤용... 그의 靑皐實記에 미인도를 그렸다는 기록이

있어서 당시 사회 분위기로 봐서 사대부집안에서 미녀 그림을 그리기 어려운

때라 낙관을 찍지 못했음을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복의 형상으로 봐서

18세기 말~ 19세기 초 라는 의견도 있어서 윤용의 그림이 아닐 것이라는

추정도 있습니다.(이태호 명지대 교수. 일반학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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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두서 자화상. 국보 제 240호

80년대초 국립 중앙박물관에서 처음 본후, 잊혀지지 않고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 파격적인 얼굴이었습니다.
 사람들과 학계에선 ...미스테리 자화상. 왜 머리만 있는가? 라는

물음이 있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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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눈매는 형형 강렬하여, 두렵기만 합니다. 자기 존엄감이 강한 얼굴...

작년인가 KBS 역사스페셜에서 그의 그림 탐구편을 봤습니다.

 그는 당쟁사회에서 등용되기 어려운 남인 가문의 사람으로 울분과,  22세부터

아내, 부모, 친한 친구의 죽음을 겪어 슬픔과 스트레스로 인해 30세에 이미 반백이

되었다는 사실... 그의 얼굴에 깃든 비장미도 이해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표구도 하지 않은 낱장 그림으로 녹우당에 전해내려온 점....원래는 귀도 있었고 

옷도 있었고, 쥐수염 붓으로 한올한올 수염을 그렸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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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의 옛말은 얼골... '얼을 담은 골'..얼굴에는 얼이 담겨있어야 함.
 옛사람들의 초상화 핵심은 ‘전신사조(傳神寫照)' 였다고 합니다.

실제의 형상을 그대로 묘사함은 물론 神..즉 정신까지 담아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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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 백마도(柳下白馬圖)

말을 좋아해서 말그림들을 남겼지만, 그는 결코 말을 타지 않았으며,

하인들에게도 하대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역사스페셜을 통해 알게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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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재는 모든 인간이나 동식물을 그릴때 종일 관찰한 뒤에야 비로소 그려 그의 그림은

사실적 경향을 나타내고 있으며, 정신의 표현까지 이르고 있다고 합니다.

버드나무 가는 줄기는 미풍에 흔들리며, 순한 눈매의 백마는

잘 양육된 것 같고 뒷다리 한쪽을 살풋 들고 때를 기다리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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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선도 유물 전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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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 윤선도(1587- 1671. 서울출생)
고산 윤선도 표준영정 / 작가 이종상(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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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도의 모습. 촌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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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도의 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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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양. 거문고 (후손 윤덕희 1684-1772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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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산의 음악 사랑...반금 권해에게 준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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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 봉림대군의 스승이었던 고산이 봉림대군  즉, 효종이 승하하자
그의 왕릉을  정할 때 사용했던 나침반이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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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우당 현판/ 옥동 이서의 글씨
옥동 이서는 성호 이익의 이복형이며, 동국진체 글씨의 원조로 알려짐
공재 윤두서는 성호 이익 집안과 친하게 지내며, 혼사도 맺었다고 합니다.
 

[편집]DSC06966.jpg윤선도와 윤두서 등 역사적 인물을 배출했으며, 이 고택을 중심으로
남도문화가 꽃을 피운 녹우당.  어초은 공파의 유물 4600 여점을 소장하고 있었음.
 
녹우당에는 윤선도. 윤두서 작품및 그 자손들의 그림과 글씨, 옥동 이서의
글씨 등 소중한 문화재를 보관하고 있어서 훗날에 초의선사는 녹우당의
화첩을 빌려 소치 허련에게 그림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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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의 12세손인 윤정현의 부인 광주이씨 이상래(1882-1971) 종부의 규방가사
 

근현대의 갈림길에 살았던 종부 이상래는 한국전쟁기간에는 집안에 내려오는

문서와 유물을 벽장과 항아리에 숨기며, 많은 수고와 공헌을 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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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군은 지역의 대표적 역사문화자원인  고산 윤선도 유물전시관을 작년에
1종 전문박물관으로  정식 등록을 작년에 마쳤습니다.특별기획전시회, 학술세미나,
공모사업, 답사회등 다양한 프로그램도 운영하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나갈
전통체험문화공간으로 조성해 나갈 것임을 밝혔습니다.


 
10 Comments
lsbj52 2016.08.27 12:34  
여기도 강진 다산기념관처럼 자그마했던유물전시관을 크게 조성한듯 합니다그때도 미인도는 물론 초상화도 못보고왔어요 님은 허술하게 포스팅하지 않아참 잘 읽었습니다
지리산아기동자 2016.08.27 13:09  
윤두서의 얼굴은 지금도 대단한 기를 뿜어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파우 2016.08.27 23:58  
아~ 수염쟁이 반갑구려 ㅎ ㅎ  언제 보러 가리다..담 [절세미인도^^]
리버룸 2016.08.28 10:17  
예, 맞습니다. 2010년부터 옛 유물전시관은 충헌각이되었나 보더군요. 거기선 현대작가들의 윤두서와 교감하는 전시가 열리고 있어서 나름 참 좋았습니다.미인도 진품은 저도 못보고...초상화는 봤네요. 반가워요..^^
리버룸 2016.08.28 10:18  
첫대면, 첫인상이 강렬해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얼굴이죠...
리버룸 2016.08.28 10:18  
예, 정말 기를 뿜어내는 뛰어난 얼굴, 뛰어난 초상화 입니다.
mulim1672 2016.09.01 22:52  
지방에 이런 훌륭한 전시실 있다는 사실이 놀랐습니다. 공재가 미술에 끼친 공로가 무척큽니다공재의 자화상을 본것만해도 역사적입니다.
콩지 2016.09.02 08:29  
덕분에 앉아서 역사 미술 공부 잘 했습니다. 자화상의 그림을 직접 사진에 담아 오셨으니 마음이 뿌듯했겠습니다. 말 그림은 중국 화가들이 무척이나 즐겨 그리는 대상의 하나인데, 그 중 외국 선교사가 그린 백준도(백준도)는 대만 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저는 복사본 하나를 가지고 있습니다 ㅎㅎㅎ
리버룸 2016.09.02 10:39  
예, 자기 응시의 눈, 세세한 관찰력, 위엄과 고독이배어있는 잊지못할 얼굴이지요. 천편일률에서 벗어난,역사적 창작품이지요....
리버룸 2016.09.02 10:42  
중국 말그림은 보기에도 대단했습니다. 좋은 복사본을가지셨군요. 진품 보다 못할게 뭐있겠어요..저도 러시아 에르미타쥬에서 사온 마티스 복제품을 액자에 걸어두고 구겨질세라 가지고 온 첫 러시아 여행의 추억에애지중지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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